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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영국의 탐험가 테리 호지킨슨는 롬멜의 보물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을합니다.

 

 

세계2차세계대전중 수세에 몰리던 독일군을 보고, 전황이 불리하다 생각한 한 장군은 자신이 모아놓은 막대한 양의 보물들을 사하라사막으로 옮겼다고 전해지게 됩니다. 이 장군이 바로 사막의 여우라 불리는 롬멜이였습니다.

사하라사막의 비밀장소에 보물들을 묻고돌아오던 독일군은, 연합군에 의해서 전멸당했고 이후 보물이 묻힌장소는 소문으로만 떠돌게 됩니다.

 

 

 

1948년 6월 독일 친위대 잠수부로 재직했던 페터 플라이크는 프랑스령 코르시카섬으로 여행비자를 발급받습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영사관직원에 의해서, 페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되는데요. 페터는 자신이 코르시카 바다에 롬멜의 보물을 수장시킨 당사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1943년 상관의 명령으로 특수임무를 뛰고 6개의 철제 상자를 코르시카 바닷속에 숨기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때 몰래 상자의 내용물을 보게 되었다는것이었습니다.

페터의 주장으로 흥분한 프랑스정부는 그와 협업을 제안했으며, 보물인양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게됩니다. 하지만 보물은 찾을수가 없었고, 페터는 사기죄로 2개월간 감옥에 수감됩니다. 페터는 출소후 롬멜의보물 사기극이란 기사로 유명해진 한기자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페테가 자신은 사실 이탈리아군이었으며, 보물상자를 코르시카 바다에 수장시킨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하게됩니다. 전세가 기울던 1943 연합군에게 쫒기던 보물수송팀이던 페터, 어쩔수없이 보물을 바닷속에 던져버렸다고 말했습니다.

페테는 현제까지도 코르시카 바다에 수장됐다고 하는 롬멜의 보물을 인양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성배 설

 

그런데, 일각에서는 롬멜의 보물이 단순한 금은보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있습니다.

롬멜의 보물이 바로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예수의 '성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나치의 성배 탐사는 나치 친위대장인 하인리히 힘러에 의해서 세계2차대전당시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 작전이었습니다.

이 성배가 북아프리카 이집트의 고대 사원중 하나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잔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황금잔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신비주의에 심취한 오컬트매니아 히틀러와 힘러의 성배에대한 집착이 만들어진 루머일수도 있습니다만, 또다른 설에 의하면 롬멜의 보물은 사실은 핵무기 제조를 위한 광석 원료라고 하는데요.

 

 

 

핵무기 설

 

미국의 이반 샌더슨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북아프리카 이집트지역에서 발견되는 트리니타이트라는 물질이 롬멜의 보물이었다고 합니다. 트리니타이트는 핵폭발이 발생한 지역에서 생기는 녹색유리 결정을 말하는데요. 고대 문명에서 핵 전쟁 발생했다는설에 근거한 이야기입니다. 

트리니타이트는 1945년 미국의 핵실험으로 처음 발견되었으며, 이후 메소포타미아 유적지, 인더스문명의 모헨조다로 유적등에서도 발견됩니다.

 

세계2차대전 당시 롬멜은 이집트와 터키근처에서 발견되고있는 이 트리니타이트 결정으로 우라늄을 정제거나 핵을 사용할수 있는 기술연구를 도모하려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롬멜의 보물은 정말 실체가 있는 이야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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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힘러 (1900 10월 7일 ~1945년 5월 23일) 나치 친위대 SS 와 게슈타보의 지휘관으로 유대인 학살을 주도 하였다. 

 

힘러는 아브라함과 예수의 자손이 유대인이 아니라 아리안 혈통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던 신비주의자였던 동시에 예수의 성배를 찾아 아리아인의 상징물로 활용하려는 전형적인 민족우월주의를 쫒던 인물이었다.

성배를 찾을 마땅한 인물로 그는 오토 란을 선택한다. 고고학을 전공한 오토 란은 성배 연구에 집착하고 있었는데, 성배추적중 몽테스큐 성 지하동굴에서 13세기 성배를 마지막으로 소유했을지 모르는 카타르 기사단의 흔적을 찾게된다. 이로 말미암아 유명세를 타게된 그를 힘러는 SS친위대의 고고학자 로서 성배를 탐사를 맡기게 된다. 오토 란이 집필한 책을 5000권이나 인쇄하여 나치의 엘리트들에게 지급했다고도 한다. 오토 란은 나치와 정치적인 내적 갈등이 생기고 이후 나치와 반대되는 행보를 걷다가 의문사하게 된다.

1940년 성배를 찾던중 그는 직접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세랏 수도원을 수색했던 일화가 있었는데, 이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 에서 힌트를 얻었다는것이다.  파르지팔의 한부분에 성배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성배는 피레네 산맥의 몬살바르 지역의 큰성에 보관되어있다'. 바그너의 성배에 대한 믿음은 기존 많은 작품에서 성배의 존재를 언급한 대에 있었으며, 특히 13세기 음유시인 볼프랑 폰 에션바흐의 작품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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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입찢어진 여자가 있다면, 유럽에는 입찢어진 남자가 있다. 별명이 무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

1908년 출생,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나치의 지휘관. 무수히 많은 그의 구출 작전중에서는 무솔리니 구출이 가장 눈에뛴다. 재능이 많던 그는 펜싱검사로써 이름을 날리고, 엔니지어와 언어학에도 특출났다고 한다.

나치 친위대 지휘관이 하인리히 히믈러의 명령을 받아 나치의 전 고고학자 오토 란의 뒤를 이어 성배 탐사에 투입된다.

이후 성배를 찾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어 알려진바가 없다.

 

이후 주요 행적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는 전범으로 투옥되지만 1948년 7월 27일 탈옥에 성공하여 스페인에서 엔지니어로 정착
  • 1952년 여행의 자유 허가
  • 1959년 아일랜드 칼데어 에서 농장을 사들이고 정착
  • 1970년 칼데어에서 성기사 용병단을 조직: 이집트의 나세르, 아르헨티나의 후안페론 대통력의 고문역을 역임
  • 1975년 7월 5일, 마드리드에서 암으로 사망

가설

성배발굴은 막대한 탐사비용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였다고 전해진다. 굳이 찾았다면 숨길 이유가없다. 힘러는 이를 전쟁에  십분 활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코르체니가 성배를 찾았고 종전 이후에도 쫒았다는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이유가 하나있다. 1970년 그는 팔라딘 용병단을 조직하는데, 팔라딘이란 어원은 십자군전쟁에서 유례된 말이라는 것이다. 십자군전쟁에서 행방이 묘연해졋다는 성배와 십자군 전쟁에서 예루살렘을 지켰다는 성기사를 굳이 용병단의 이름으로 택한 스코르체니를 그저 우연으로만 치부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것은 그가 성배발굴에 가장 근접한 인물중 한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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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인물인 인디아나 존스는 기본적으로 나치와 적대적인 관계로 성배등 고대 유물과 보물을 두고 다투는 경쟁관계에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인디아나 존스의 모티브가 된 오토 란 이란 인물은 독일 나치의 사령관 친위대로 있었습니다. 그는 1904년 독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후 나치 보물탐사대를 꾸려 전세계를 누볐는데요. 하인리히 힘러의 막대한 지원아래 성배 탐사에 집중합니다.

 

카타르 기사단의 비밀동굴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던 오토는 유난히 성배에 집착하는데, 성배의 흔적을 찾아나선 그는 카타르 기사단이 성배의 마지막 소유자였다고 확신하고 그들의 흔적을 찾아 가던중 카타르 기사단의 비밀동굴을 찾아냅니다만 성배는 찾지못했습니다. 이 발견을 계기로 그는 성배에 관심이 많던 나치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와 만나게 되고 그의 친위대원의 고고학자로서 본격적으로 보물과 성배를 찾아 다닙니다. 결국 그는 성배를 찾지도 못하고, 사실은 유대인이었던 오토는 나치와 반대성향의 언행을 보이다가 35세 나이로 의문사 합니다. 

이후 성배 탐사는 오토 스코르체니에게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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