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성배

성배의 마지막 향배를 쫒던 나치의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 오토 슈코르체니

wwstory 2021. 9. 28. 11:27
728x90

일본에 입찢어진 여자가 있다면, 유럽에는 입찢어진 남자가 있다. 별명이 무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

1908년 출생,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나치의 지휘관. 무수히 많은 그의 구출 작전중에서는 무솔리니 구출이 가장 눈에뛴다. 재능이 많던 그는 펜싱검사로써 이름을 날리고, 엔니지어와 언어학에도 특출났다고 한다.

나치 친위대 지휘관이 하인리히 히믈러의 명령을 받아 나치의 전 고고학자 오토 란의 뒤를 이어 성배 탐사에 투입된다.

이후 성배를 찾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어 알려진바가 없다.

 

이후 주요 행적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는 전범으로 투옥되지만 1948년 7월 27일 탈옥에 성공하여 스페인에서 엔지니어로 정착
  • 1952년 여행의 자유 허가
  • 1959년 아일랜드 칼데어 에서 농장을 사들이고 정착
  • 1970년 칼데어에서 성기사 용병단을 조직: 이집트의 나세르, 아르헨티나의 후안페론 대통력의 고문역을 역임
  • 1975년 7월 5일, 마드리드에서 암으로 사망

가설

성배발굴은 막대한 탐사비용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였다고 전해진다. 굳이 찾았다면 숨길 이유가없다. 힘러는 이를 전쟁에  십분 활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코르체니가 성배를 찾았고 종전 이후에도 쫒았다는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이유가 하나있다. 1970년 그는 팔라딘 용병단을 조직하는데, 팔라딘이란 어원은 십자군전쟁에서 유례된 말이라는 것이다. 십자군전쟁에서 행방이 묘연해졋다는 성배와 십자군 전쟁에서 예루살렘을 지켰다는 성기사를 굳이 용병단의 이름으로 택한 스코르체니를 그저 우연으로만 치부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것은 그가 성배발굴에 가장 근접한 인물중 한명이라는 것이다.

 

 

728x90